在日朝鮮人と日本人のよりよい未来を目指して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보다 나은 미래를 목표로
同志社大学・板垣竜太さん
도시샤대학 이타가키 류타 님
(한국어는 아래를 봐주세요)
京都朝鮮第二初級学校が1965年4月に創立したときはプレハブでした。
そこは、かつて三菱重工の飯場だった場所で、戦時期に動員された朝鮮人たち、のちにそこに移住してきた朝鮮人たちが集落をつくっていました。
電気も水道も整備されず、自分たちの力で「村」をつくりあげ、そこに学校の仮校舎を建てたのです。その半年後の10月、別の野原だった場所に、鉄筋コンクリートの新校舎が落成しました。
地域の在日朝鮮人は身銭を切って、学校建設資金を出し合いました。最も多くの寄付をした方は、戦時期に労働動員され背中に傷を負ったこともある方で、その後、ご自身は四畳半の小さな部屋に住みながら、京友禅の蒸し工場でためてきた私財を、そっくり学校建設に差し出しました。
それから間もなく60年。学校の老朽化は「待ったなし」です。それでも、地域の在日朝鮮人たちは、先人が苦労して建て、守り抜いてきたこの学校を、ひきつづき持続的な民族教育の場とするために、このたび一念発起しました。
朝鮮学校は、日本の一般の公私立学校(いわゆる「一条校」)では実現することのできない、在日朝鮮人のための民族教育を担っている学校です。
今の一条校は事実上「国民」教育を中心にできあがっています。これは在日朝鮮人とともに歩んできた日本の歴史と現状に合わない制度的欠陥だと私は思っています。
その結果として、国の支援から朝鮮学校は排除され、地方からは何とか出ている補助金も教育事業のごく一部にしか使うことができません。
この欠陥を少しでも埋め、在日朝鮮人と日本人が平等な立場で生きられる、よりよい未来を目指して、この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に協力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は心から願っています。
교토조선제2초급학교가 1965년 4월에 창립한 당시에는 조립식 가건물이었습니다.
그곳은 과거 미쓰비시 중공의 함바였으며 전쟁시기에 동원된 조선사람들과 나중에 이주해 온 조선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정비되지 않은 채 자신들의 힘으로 ‘마을’을 만들고 거기에 학교 임시 교사를 세웠습니다. 그 반 년 후인 10월, 들판이었던 지금의 장소에 철근 콘크리트의 새 학교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지역의 재일동포들은 푼돈을 모아 학교 건설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가장 많은 기부를 한 분은 전쟁 때에 노동 동원되어 등에 상처를 입었던 분으로, 그 이후에 자신은 2평 남짓의 작은 방에 살면서 기모노 염색 공장에서 모은 사재를 전부 학교 건설에 내어 놓았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곧 60년. 학교의 노후화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의 재일동포들은 1세가 힘들게 짓고 지켜온 이 학교를 계속해서 지속적인 민족교육의 장으로 지켜 나가기 위해 이번에 대동단결하였습니다.
조선학교는 일본의 일반 공사립학교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재일조선인을 위한 민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입니다.
지금의 일본 공사립학교는 사실상 ‘국민’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재일동포와 함께 걸어온 일본의 역사와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적 결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결과 국가 지원에서 조선학교는 배제되고 간신히 지급되는 지자체의 보조금도 교육사업의 극히 일부분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평등한 입장에서 살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목표로 이 펀딩에 협력해주시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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